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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생활치료센터 근무 썰 (2)

3.
그렇게 이틀 만에 부랴부랴 서울 갈 채비를 하고 상경에 나섰다. 서울지역 첫 집합 및 사전교육은 서울시청에서 시행함. 업무기간과 시간, 대략적인 업무내용과 급여, 이후 자가격리 및 입영 등에 대한 브리핑을 간략하게 받았다. 사실 급여 관련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그래도 전문의라서 그런가 급여가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일을 하고 이 정도의 페이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당시엔 심리적으로 꽤 많다고 느꼈다). 여태 전공의 신분으로 노예처럼 일하다가 드디어 보더 대우를 받나 싶어서 기분이 맹숭맹숭했다. 어쨌든 서울 안에서도 배치지가 나뉘는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서울시 보라매병원 소속으로 배치가 되었다.

 

그날 바로 보라매병원으로 가서 OT를 들었다. 근데 하루만 아니라 근 이틀동안 OT가 이어졌다. 어쨌든 단기지만 병원 소속으로 진료도 하고 처방내릴 일도 있으니 ID도 만들고 전산교육도 받아야 했다. 더불어 이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신규직원 개념이니 신규직원 임용 시 받는 교육이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훈련소로 갈 뻔했다가 민간병원에 새로 입사하는듯한 느낌을 계속 맛보니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다.


이후에는 세부 파트로 나눠서 업무 분담을 받았다. 사실 난 처음 서울 올라갈 때만 해도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하는 일을 맡을 줄 알았다. 우리 과는 코로나 병동 환자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당연히 선별진료소행이 맞겠지. 반면 그렇다고 왜 꼭 우리 과를 선별진료소에서 원하나? 하면 그것도 설명이 되질 않았다. 안철수도 했던 것처럼 선별진료소는 면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 배치될 파트 목록 중에 생활치료센터가 있는 걸 보니 그쪽으로 가겠다 싶었고 아니나 다를까 생활치료센터로 배치가 되었다. 뭔가 각오를 하고 왔는데 상대적으로 널널한 파트에 배정이 되니 약간은 김이 빠진 느낌이었다. 근데 그 와중에 생활치료센터는 현재는 거처를 마련 중이며 OT 받은 그 다음 주에 완공 및 가동 예정이라 결국엔 실제로 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생각했던 셋째 날도 OT가 이어졌다. 업무 시작 후 주말을 포함해서 근 5일 동안 교육을 제외하면 근무는 전혀 없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4.
그렇게 서울로 갈 줄 알았던 처음과 달리 난데없이 경기도 구리시로 향하게 되었다. 구리시 갈매동은 내게 나름 추억이 서려 있는 동네다... 이유는 나중에 후술.

 

서울시 생활치료센터는 태릉선수촌 내에 시설을 활용, 재배치 혹은 개조하여 운영을 했다. 진천선수촌이 개관한 이후 선수들은 그쪽으로 다 넘어간 걸로 아는데 왜 아직까지도 태릉에 도쿄 올림픽이니 베이징 동계올림픽이니 하는 올림픽 로고들이 걸려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러가지 이권이 얽혀 있어서 폐관 및 철거가 안되고 있다고는 하는데 어떻게든 모종의 이유로 운영은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래도 뭔가... 태릉이란 이름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아직도 유효하다 싶다. 나는 체육인도 아닌데 이곳에 오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왜지?

 

태릉선수촌 건물을 십분 활용하여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더라. 올림픽의 집은 상황실로 사용하고, 옥상엔 컨테이너박스로 CXR+PCR 검사실을 두고, 선수들이 사용하던 기존의 숙소를 환자 생활공간으로 활용했다. 기존의 건물을 십분 활용하여 나름 잘 구성했다 싶었다. 더 세부적인 건 말할 수 없고 대부분의 시스템은 보라매병원에서 파견 나오신 분들이 열심히 짜셨기 때문에 임관 예정 군의관들이 할 일은 환자 보는 것밖엔 없었다.

우리가 맡았던 부분은 환자의 1) 검사시기, 2) 퇴원시기, 3) 전원시기를 결정하는 것. 이곳에서 통용되던 검사시스템은 첫 증상 발생 1주일 후 PCR+CXR, 양성일 경우 그다음 1주일 후 PCR+CXR을 하기로 했다. 이후에는 격일 혹은 증상에 따라 검사 시행, 한 번 음성 확인 시 익일 재시행하여 음성일 경우 퇴원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일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세한 프로세스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환자분들 상태나 검사 결과를 close observation 하고 follow up study를 결정을 잘하면 되었고, 조금이라도 나빠져서 입원 및 병원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지체 없이 전원시키기로 했다. 다른 데서는 검사 결과를 어떻게 판정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여기서는 PCR을 상기도/하기도로 나눠서 시행하고, 검사 결과가 모두 negative가 나와야 하는데 positive가 아니라 intermediate라도 positive에 준해서 판정했다. 당시엔 코로나 판데믹 초창기였고 재감염 이슈도 있어 최대한 깐깐하게 완치 판정을 내려 재확산을 막자는 취지에서였던 것 같다. 때문에 실제로 증상도 모두 호전됐고 재원기간도 긴 환자들이 PCR이 애매하게 뜨는 바람에 재원기간이 길어지는 등 고생을 했더랬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생활치료센터는 병원이 아니라 입원처리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외래 시스템을 차용한 것. 아침에 입실 중인 환자들을 싹 다 접수하면 군의관이 나누어서 비치된 휴대폰으로 카톡으로 페이스톡을 해서 문진을 하고 약이 필요하면 처방을 해서 도시락과 함께 배급하는 식으로 진료를 봤다. 직접적인 대면이 없어서 감염으로부터 매우 안전했지만 음... 이 시기 즈음 해서 원격진료 도입과 관련해 이런 저런 말이 많았는데 결국 이런 식을 토대로 원격진료가 얼렁뚱땅 시행되는 것인가 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음. 생활치료센터는 무증상이거나 정말 경미한 증상만 가진 환자분들만 있어서 화상진료만으로 대부분 커버가 가능했고 접촉하지 않으며 진료를 보려면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 반면 원격진료만으로는 정보가 제한되는 점이 많아 충분한 진료는 불가능한 점이 있어 결국 아직까지는 원격진료가 주류가 되지 않고 있다.

여튼 그렇게 2주 하고도 좀 더 일하다가 나왔는데 군의관이 빠질 즈음에는 환자 수가 꽤 쌓였기 때문에 과연 보라매병원 인력만으로 커버가 가능했을까 하는 걱정을 한동안 했다.

 

 

5. 기타 트리비아
근무 중에 식사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실한 환자들과 같은 도시락을 먹었다. 근데 서울시에서 정말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인지 매일 도시락 메뉴가 바뀌고 양도 많고. 일하는 우리는 데워 먹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으나 입실 중인 분들은 각자 방에 전자렌지도 있기 때문에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같이 일하던 선생님이 왜 매번 도시락을 찍냐고 이야길 하던데 대충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그냥 찍어서 남겨보고 싶어서 찍어봄. 삼시세끼 밥이 내 기준에는 정말 잘 나왔기 때문에 잘 먹었고 그래서 그런지 식비가 거의 안 들었다. 오히려 근무를 안 나가고 오프를 받으면 도시락을 못 받고 식비를 따로 들여야 하니 조금 이상하다 싶기도 했음.

 

 

구리시 갈매동은 올해 전문의 고시를 삼육대학교에서 치는 바람에 전날 미리 도착해서 근처 호텔방을 잡는다고 들렀던 적이 있었다. 보라매병원에서 태릉선수촌으로 근무지가 바뀌면서 숙소는 병원측에서 잡아 주기로 하였으나 내가 찾아봤을 때 이전에 전문의 시험 때 묵었던 호텔이 가격이나 퀄리티 면에서 훨씬 괜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숙소비는 그대로 받고 자체적으로 숙소를 해결했다. 다시 오게 될지 몰랐던 동네를 또 오게 되었고 전문의 고시 때와 똑같은 호텔을 또 묵게 되었다. 기분이 얼마나 이상하던지. 동네는 예쁜데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약간 사람 사는 냄새는 엄서 보였음. 그런 거 보면 대구는 촌이고 나는 아직 촌사람이다 싶다.

 

뭔가 처음에 생각한 것에 비해 글이 힘없이 끝나는 느낌이 있는데 그냥 요즘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서 생각 나는대로만 한번 정리해 봄. 생활치료센터보다 병무청의 병맛을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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