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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님의 조각



푸른님 크로니클



DO YOU KNOW?
http://www.pulenim.com
(the page is not found now)



이 글은 [푸른님]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분이 아닌 그분의 이름이 걸려 있던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기이다. 언젠가는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2011년 포스트로 남겼으나 5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때와는 여러모로 달라진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분을 고쳐 적었다. 160112일자부로 버전 2의 포스트이다.




내 기억의 [푸른님의 포켓몬스터]는 크게 세 부분이다.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의 [푸른님의 포켓몬스터]
2001년 대규모의 리뉴얼을 거친 [푸른님의 포켓몬 아카데미]
이후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인터넷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발을 들여놓았던 커뮤니티는 [푸른님의 포켓몬스터]였다. 포켓몬 2세대의 공략을 위해 찾은 이 회색 테마의 커뮤니티는 벌써 세번째 버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이 커뮤니티가 어떻게 태동을 했고 어떻게 발전하기 시작했는지는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사실 세번째 버전이 맞는지도 기억이 가물하긴 한데 어쨌든 Wayback Machine을 통해 그 때 당시의 페이지를 찾아낼 수 있었고 이 홈페이지에서 넷츠고 게시판을 사용하고 있는 것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 Wayback Machine의 제한적인 기능 덕분에 더 나아가 게시물을 열람할 수는 없었다.

기억상으로는 푸른님의 포켓몬스터에는 세가지 게시판이 있었다. 자유게시판과 소설게시판 그리고 FAQ 게시판. 내 기억으로는 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시판은 아마 소설게시판이었던 것 같다. 굳이 푸른님의 포켓몬스터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파인클릭 소설 게시판의 인구를 생각해 보면 당시 이런 류의 팬페이지는 으례 소설게시판을 주축으로 돌아가고들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한 멀티 플레이가 보편화되어 대전 등이 주요 컨텐츠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콘솔이 발전하는 속도가 다소 늦은 때라 정모처럼 크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 유저간 대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교환과 대전 등의 멀티플레이를 모토하는 게임을 오프라인에서밖에 즐길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속에서 그당시 포켓몬 커뮤니티의 주요 컨텐츠는 어느 포켓몬이 누가누가 더 '쎈'가 등의 스토리 공략이라든가 애니메이션 등에서 파생된 OST 수집 혹은 소설 쓰기 등이 전부였다. 그 중 소설이 가장 액티브하게 즐길 거리로 당시 수많은 초중딩들이 엄청난 양의 소설을 써 댔다. 그러다 보니 소설게시판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푸른님의 포켓몬스터 소설게시판은 자유게시판보다도 더 활발했다. 그당시에는 게시판에 댓글 기능이 없었을 때라(댓글 기능이 보편화된 건 2000년대 중반즈음 제로보드를 너도나도 들여놓을 시점부터였다) 소설을 써 놓으면 코멘트를 답글로 달아놓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러다 보니 소설이 순수하게 게시물 목록을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소위 작가님이라 서로를 부르던 소설게시판 이용자들이 자유게시판에 가질 않고 소설게시판에서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왁자지껄한 소설 게시판에서 관리자인 푸른님은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학업때문에 대단히 바쁜 것으로 기억되는 푸른님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메인 페이지의 공지사항일 뿐 숱한 게시물 사이에서 그의 모습을 본 기억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 공지사항이 정말 가끔이나마 갱신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푸른님의 존재를 의식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분은 대부의 느낌? 우리 눈앞에 있지 아니하였고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우리의 활동 패턴을 바꾸는 일도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막강한 힘을 지닌 채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그런 알 수 없는 존재감만큼 푸른님은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그는 무리에 끼어 터전을 구성하는 일원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그 터전을 만든 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더불어 개인사정에 지쳐 그 막강한 영향력을 홈페이지를 폐쇄라는 방법을 통해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이 홈페이지에 대한 이후의 기억이 없어서 과연 이 포스트를 작성할 일도 없었을 테지만 여러모로 다행히도 푸른님은 그러지 않았다. 푸른님은 기존의 터전을 그대로 유지하는것도 모자라 오히려 거기서 더 나아가 그곳을 더욱 멋진 곳으로 가꾸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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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Wayback Machine이 이미지까지 완벽하게 보존하지 않아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흔적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 상태다 . 그걸 그대로 이 포스트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어쨌든 무채색의 단조로운 페이지는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타이틀과 함께 밝고 활기찬 분위기의 사이트로 변모했다. 더불어 아카데미라는 이름에 걸맞게 운영자인 본인을 교장으로 두고, 임시로 열어둔 커뮤니티의 장을 카페테리아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이후 동아리 게시판도 신설하여 기존의 흔해빠진 커뮤니티와 노선을 달리하여 차별화 하겠다는 큰 의도가 담겨 있었다. 당시 포켓몬 커뮤니티에서 그림이나 동영상 소설 게임까지 주제를 막론하고 모든 컨텐츠를 한꺼번에 담으려는 경향과는 달리 동아리 게시판을 통해 '커뮤니티 이용자에 의한 컨텐츠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홈페이지의 전문성을 살리려는 시도는 당시로서나 지금으로서나 정말 획기적인 시도였다. 더불어 그간 사정상 본인이 미처 운영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학생회 게시판을 두어 간접적으로나마 보완하려고도 했었으나... 사실 그 게시판 자체가 지니는 영향력이 미미하였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나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물론 큰 그림을 그렸던 것에 비해 푸른님이 바쁜 학업 중에 시간을 쪼개 웹페이지 개발을 하고 운영을 하던 터라 그것들이 채워지는 속도도 더뎠고 여타 커뮤니티가 그러하듯이 커뮤니티 이용자간의 잦은 분쟁이 끊이질 않았지만 이 시기가 [푸른님의 포켓몬스터]의 전성기였노라고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다. 어느때보다도 중2돋는 소설들이 많이 올라왔고 그만큼 작가들도 일반 커뮤니티 이용자도 많았고 오에카키 게시판에 Cafe24 채팅방에서 정팅(예전엔 이런 것도 있었다ㅋㅋ)까지... 점점 산으로 가는 릴레이 소설은 그 시기의 꽃이었다. 더불어 예전에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공지로나마 그 존재를 잠시 확인할 수 있었던 푸른님도 게시판에 한번씩 나타나고 정팅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 커뮤니티 구성원과 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이 부분은 이 홈페이지의 길고도 짧은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발전 중 하나이다ㅋㅋ). 그때 우리 모두가 각자 마음 속에 품었던 아카데미의 모습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획하고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완성이 되는 순간... 과거의 기대를 되짚어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벅찰 수가 없다.




하지만 기획도 기대도 거기까지였다. 어느 순간 예전으로 돌아가 푸른님이 다시금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그 자리에 남아 각자 하던 활동을 계속 하고 있었으나 관리가 안 되던 홈페이지는 도메인이 만료되고 호스팅이 끊겨 접근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카지노 광고 배너가 뜨던 그 페이지를 처음 본 순간의 표정은 진짜 나라 잃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혹자는 카지노 사이트로 변했다고 하지만 국제도메인의 기간이 만료되어 리다이렉트된 페이지에 뜬 광고 배너 때문에 그렇다고 착각을 했을 것일 뿐 관리자가 멀쩡하게 돌아가는 홈페이지를 부수고 뜬금없이 카지노 사이트를 만들 리도 없고. 아마 푸른님이 군엘 가셨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해서 발빠른 대처가 불가능하게 되어 한순간에 우리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당시 누군가가 홈페이지의 관리 전권을 위임받거나 했으면 방법이 있었을텐데 그러지도 않았고, 갑자기 뿔뿔이 흩어지게 된 사람들을 모으려는 움직임도 없었다. 큰 꿈을 품었던 커뮤니티는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며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묻혔다.





하지만 그간 그때 당시 추억을 가지고 서로의 발자취를 쫓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과거 ピカチュウ라는 닉네임을 쓰던 분은 그 시절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닌듯 했고 실제로 이 블로그에서 한 번, 예전 태터툴즈 블로그를 쓸 때도 한 번 컨택이 된 적 있었다. 사실 나도 무료호스팅을 얻어 돌리던 2004~5년쯤 그 흩어진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싶은 마음에 홈페이지를 개설한 적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 홈페이지는 Wayback Machine에도 남아있질 않지만 그때당시 알게 모르게 소식을 들은 구 아카데미 회원들이 적지 않게 홈페이지를 찾았다. 다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나조차도 호스팅이 끊어져 홈페이지도 한순간 사라졌고 또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게 되었다. 커뮤니티를 재건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때 정말 친하게 수다 떨면서 살던 사람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만들었던 홈페이지였는데 여러모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잘들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다. 다만 그때 만났던 친구 한 분과는 아직까지 드문드문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참 소중한 인연이다.



어딘가에는 그 아카데미가 다시 살아나 다시 학생들을 모으고 있지는 않을지, 혹시 관리자였던 푸른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드문드문 나름대로 자료와 흔적을 찾았지만 썩 만족할만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런 것 말고 푸른님이 컴공 관련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자료를 예전에 찾았는데 그 url도 시간이 지나니 접근불가가 되어버렸다. 결국 지금은 이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나도 성인이 되었고 그때 소설 쓰고 잡담 하고 가끔은 말로 치고 박고 싸우던 사람들도 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지낼텐데 어디서 무얼 하는가 싶다. 가끔은 아까 말한 그 친구처럼 연락하며 안부나 전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럴 방법이 없는 것이 좀 아쉽다. 다만 1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새로이 마주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추억은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정말 기회가 된다면 그때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술이나 한 잔 걸치고픈 아련한 소망이 있지만.







나는

숱한 닉네임을 거쳤지만

결국 아카데미에서 텐토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이 글이 그때의 사람들에게 그때의 기억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작은 조각이 되길.



초판 :: 11.04.05 01:22
2판 :: 16.01.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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