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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to EUROPE #8 프랑스 DAY2


파리에서의 둘째날은 정말 빡빡한 일정으로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출국하기 전 오리지널 멤버 세명이서 모여서 회의할 때 프랑스 담당 영짱이 짠 계획표에 의하면 둘째날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09:00 오르세 미술관
12:00 콩코르드 광장-카루젤 개선문-퐁네프 다리
12:30 콩시에르쥬리
13:30 점심
14:30 노틀담 대성당+생샤펠 교회
16:00 시청사
16:20 오페라 가르니에
17:00 콩코드 광장으로 와서 상젤리제 거리로
17:20 개선문
18:00 라데팡스(신 개선문)
19:00 저녁
20:00~ 이후 일정은 유람선 타고 숙소로 가기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절대로 실현 불가능한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일찍 준비해서 나선다고 해도 과연 저 일정을 완전히 다 소화할 수 있었을까? 절대로 아니올시다 이다. 사실 이 말은 돌아서서 생각하면 이 알찬 일정을 소화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의 말이다.

파리 둘째날의 일정을 위협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전날 늦게까지 벌어진 밤마실로 인한 늦잠과 가장 치명적인 비. 늦잠은 오르세 미술관을 포기하고 나머지 일정을 뒤로 조금씩 미뤘다면 어느정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그날 내린 비는... 정말이지 우리가 그 날씨 우중충하고 비 많이 온다는 런던에서 3일 보낸 것보다 더 많이 비가 왔다. 둘째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기다릴 때 비때문에 꽤 고생했었는데 이 날은 말 그대로 비와 눈물의 향연이었다.




어쨌든 밤마실은 4시에 끝났고 내일 룸서비스로 나오는 아침을 꼭 받자고 나와 영짱(아이비스 호텔에서는 내비 혼자서 독방, 나와 영짱이 더블룸을 썼다)이 이상한 의기투합을 하여 둘 다 룸서비스를 받을 시간인 7시 30분으로 알람을 맞추어 놓고는 둘 다 잠이 들었고 정확히 7시 30분에 알람이 울려 둘 다 깨긴 깼으나 룸서비스가 바로 오지 않아 둘 다 다시 누워버렸고 영짱은 그대로 잠이 드는듯 했으나 나라도 아침을 받아야 언제 시작할 지 모르지만 어쨌든 둘째날 일정을 시작할 때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잠에 들지 않으려고 노력한 끝에 10분쯤 늦어서 도착한 룸서비스를 부리나케 받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일부러 한문장으로 죽 이어서 썼는데 정말 그 몽롱하고 지친 상태에서 길지만 짧게 느껴지는 시간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없을까 하다가 그만... 어쨌든 둘 다 10시쯤에 일어나 한참 전에 받아두었던 아침을 먹고 주섬주섬 준비해서 11시쯤 출발을 했다. 룸서비스로 나오는 아침은 앰배서더 호텔과 비슷한 포맷이었으나 맛은 훨씬 없었다. 으웩.... 이때는 처음이니까 이것저것 먹어봤는데 다들 입맛에 안맞아서 둘째날은 정말 먹을 것만 먹었다.



호텔 앞에서. 이때부터 이미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역시 전날 보았던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은 이 날을 암시하는 구름이 분명했다. 일단 시간도 늦고 했지만 콩코르드 광장과 카루젤 개선문을 거쳐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 날 안그래도 출발이 늦어 전체적인 시간이 뒤로 미뤄졌는데 여기서 없는 시간을 더 잡아먹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하는데 직원이 없었다. 한 5분동안 기다려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언어의 장벽을 무릅쓰고 좌측에 있는 무인발급기를 이용했다. 근데 의외로 사용법이 쉬웠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래서 이 때 이후로는 영국에서처럼 직원과 상담하여 표를 구하는 일은 없이 무인발급기에서 표를 구했다.



정말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밴드. 한국도 홍대쪽 가면 길거리 공연하는 팀을 많이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패기왕성한 열혈청년들인데 비해 유럽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두 곳의 거리공연이 같은 점은 그 사람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콩코르드 역. 메트로를 가득 덮은 알파벳 타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사진을 보니 역마다 디자인이 다 다를 것이라는 내 주장이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이런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을 텐데?



그리고 도착한 콩코르드 광장.


(1) 콩코르드 광장 Place de la Concorde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으로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튈트리 공원, 북쪽으로 루아얄가를 통해 마드렌 성당, 서쪽은 샹젤리제 거리, 남쪽으로는 세느 강에 걸린 콩코르드 다리와 접해 있다. 1755년 가브리엘에 의해 설계된 이 광장은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이 15세 광장'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그 여파로 인해 이곳에 있던 루이 15세 기마상이 철거되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루이 16세가 이곳에서 처형되었으며 왕비인 마리 앙투와네트마저 이곳에서 참수를 당했다. 혁명의 뜨겁고도 잔인한 움직임으로 가득한 이 거리는 그 이후 이름도 '혁명 광장'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그러다 1795년 '콩코르드 광장'으로 처음 이름이 바뀌어 불렸고 1830년 공식 이름이 되면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콩코르드란 '화합'을 뜻한다.



1000명 이상이 처형되었던 콩코르드 광장은 신나게 공사중이었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영 볼품이 없었다.



스톤헨지에서 이런 날씨였다면 정말 우울했을거야. 그렇다고 콩코르드 광장에서 이런 날씨였지만 우울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 사진을 올리고 바라보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것 같다. 최고로 우울하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볼 수 있는 루앙 동상.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콩코르드 광장 한가운데를 쾅 내리찍고 있는 오벨리스크. 딱 보면 느낄 수 있는 오벨리스크 특유의 풍미를 보면 알곘지만 이 오벨리스크는 프랑스의 것이 아닌 이집트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강제로 빼앗은 것은 아니고 이집트의 총독이 루이 필리프 왕에게 3,200년 된 룩소르의 오벨리스크를 증정한 것이 이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자고로 광장은 탁 트인 하늘과 함께하며 여기저기에서 모인 사람들로 인해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제맛인데... 이 곳에는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낭트 동상(좌)와 보르도 동상(우). 누가 장난을 쳐 놨는지 천쪼가리를 수염처럼 붙여 놓았다. 장난꾸러기들 센스하고는ㅋㅋㅋ 보르도의 수염은 떨어졌다.



콩코르드 광장과 남쪽으로 닿아 있는 콩코르드 다리. 콩코르드 광장과 마찬가지로 루이 16세 다리, 혁명 다리, 그리고 지금의 콜코르드 다리라는 이름을 거쳐 왔다. 이 부근을 배로 건너 다녔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고자 1787년 처음 다리가 세워졌다고 한다. 다리 건너로 보이는 것은 부르봉 궁전이다.


그리고 이 우중충한 하늘을 뚫고 우리는 간다 튈트리 공원으로.


(2) 튈트리 공원 Jardin des Tuileries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난 여기서 사람들이 저 의자에 앉아서 느긋하게 광합성 하는 꼴을 보고 싶었다고!!ㅜㅜ 흐리기만 하면 모르겠는데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바닥은 물이 흥건하니까 이보다 더 우울할 수가 없었다.



튈트리 공원 지나는 내내 이런 광경밖에 보지 못했다. 비오는데 우산 하나씩 꺼내쓰고 터덜터덜 걷기만 하고 이게 뭐하는 꼴이야.... 유럽와서 처음으로 신세가 처량하다고 느꼈다.



호수의 색깔은 전혀 맑고 투명하지 않고 탁하며 녹색을 띠고 있었다. 과연 물고기가 살까? 개구리만 나올 것 같은 느낌의 호수였다. 다만 이런 호수를 비롯하여 공원 전체에 대리석상으로 장식이 되어 그나마 그런 부분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까페도 문을 닫아용.


프랑스에도 런던아이!!는 훼이크고 그냥 관람차. 아 이제 런던아이드립 그만쳐야겠다. 윈저에서의 런던아이는 그나마 그럴싸했지만 파리의 런던아이라 스티브잡스가 갤럭시S 쓰는 소리 같다.


저 멀리 카루젤 광장이 보이지만 보시다시피 도로 상태가 영 아니올시다.



이 사진이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 우리가 이날 파리 곳곳이 얼마나 험하길래 우리가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칠 수밖에 없었는지 한 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사진이다. 이런 거리를 우린 계속 걸어왔고 카루젤 광장 이후로도 궂은 날씨와 별로 좋지 않은 상태의 거리를 헤쳐 나가야만 했다. 신발이 젖는 것은 둘째치고 바지마저 상당부분이 남아나질 않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쥐고 사진 찍으러 돌아다녔다니 나도 참 어지간한 놈인갑다.


그리고 도착한 카루젤 개선문


(2) 카루젤 개선문 L'Arc de triomphe du Carrousel


카루젤 개선문을 포함하여 이 일대를 모두 카루젤 광장이라 일컫는다. '카루젤'은 원래 군사용 마장마술의 종류를 뜻하는 것으로 광장 자체는 1871년 파리코뮌의 시가전 때 불타 없어진 튈트리 궁전이 있던 곳으로 튈트리 정원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가 설치되어 35명 정도가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1848년 2월 혁명때 튈트리 궁전이 폭도들에게 의해 약탈되어 심한 손상을 받은 후 1871년 프랑스 민중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파리 코뮌)를 제압하는 동안 자치단체의 명으로 튈트리 궁전에 불을 질러 결국 궁전이 무너지게 되었고 후에는 철거되기까지 이른다. 이곳이 사라지고 공공 광장이 생겼으며 카루젤 경기장이라 불리던 이 곳을 카루젤 광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이곳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카루젤 개선문은 왜 세웠느냐? 개선문은 개인 또는 국민이 이룩한 공적을 기념할 목적으로 세운 대문 형식의 건조물로 카루젤 개선문 역시 개선문이 세워질 당시까지 나폴레옹 1세가 이룩한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1806년부터 2년에 걸쳐 건립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보다 더 유명한 개선문(에투알 개선문, 파리 개선문이라고도 한다)도 같은 해에 건립하기 시작해서 13년에 걸쳐 증축했다고 한다.


사실 이 개선문은 올라갈 수도 없고 해서 그다지 볼 만한 것은 없다.



다시 찾은 루브르 박물관. 하지만 하늘이 흐리고 비만 주룩주룩 오면 루브르 박물관 특유의 위용과 세련됨도 볼품없게 된다. 뭐랄까 폐업한 분위기다.



퐁네프. 사실 하얀 다리니까 퐁네프가 맞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퐁네자르 다리는 아니니까 퐁네프가 맞겠지?



길을 따라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한다. 이미 이쯤 왔을 때는 엄청난 비에 신발도 바지도 다 젖었을 때였다. 매우 힘든 가운데 오르세 미술관은 우리에게 한 방 더 큰 것을 선사했다.


(3) 오르세 미술관 Orsay Museum


원래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맞아 오를레앙 철도가 건설한 철도역이자 호텔로 1939년 철도역 영업을 중단한 이후 19세기를 중심으로 하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하여 1986년에 오르세 미술관으로 다시 개관하게 된다. 실제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벽에 걸린 대형 시계처럼 오르세 미술관이 철도역이었던 시절을 말해 주는 부분이 곳곳에 잘 보인다. 밀레나 마네, 고갱, 고흐, 세잔 등 보통 사람들이 들어도 아! 싶을 정도로 어느정도의 교양만 있다면 웬만하면 다 알 것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인상주의 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엄청난 인파에 우리는 고민을 했다. 과연 이 인원을 헤치고 미술관을 들어갈 것이냐 비도 오고 지치는데 그냥 다음 장소로 향할 것이냐... 사실 우리들은 이곳에 뭐가 있었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게다가 그간 미술관-박물관을 많이 보아왔던 우리는 미술관 하나쯤은 하면서 그냥 넘겼던 것 같은데 여기에 어떤 작품들이 걸려 있는지 알았다면 그렇게 가볍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파리 북역. 사실 북역인지 동역인지 잘 모르겠다. 북역이 맞을 것이다. 아마 뮤지엄패스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들른것 같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에는 뮤지엄패스를 이런 큰 규모의 역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이쪽으로 왔는데 결국 여기서는 구하지 못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문의를 해 보니 뮤지엄패스를 구매할 수 있는 역이 있기는 있는데 이곳은 아니고 여기서 멀리 떨어진 다른 역이란다. 가뜩이나 일정이 늦어지고 몸은 지치고 다음 일정을 더 이어나가야 하는 가운데 과연 뮤지엄패스를 구하러 또다시 시간과 돈을 할애할 것인가, 그전에 뮤지엄패스를 이용하면 앞으로의 일정에 있어 더욱 이득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논의까지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머리를 맞댄 결과 앞으로 남아있는 일정 중에 뮤지엄패스로 혜택을 볼 수 있을만한 장소가 그다지 많지 않고 만약 있더라도 뮤지엄패스를 이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일정에 지불하는 금액이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은 시점이 오고 말았다. 그간 많은 코스를 포기한 깔끔하면서도 슬픈 결과다. 결국 여기서 뮤지엄패스는 패스하고 다음 장소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날씨가 흐리니까 파리 북역도 굉장히 어수선했다. 이때만 해도 이 사진을 이날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파리는 어디든 이런 그림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가만 보면 도시 전체가 엄청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하나의 거대한 미술 작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다음 목적지는 노트르담 대성당 이전에 생트 샤펠이었다. 생 미셸 역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면 시테 섬으로 시테 섬에는 생트 샤펠과 노트르담 대성당을 볼 수 있다. 프랑스 거리 측정의 기준이 되는 파리의 중심인 포앵 제로도 이 시테 섬에 있는데 난 그게 있는지도 몰랐다-_-; 그래서 영짱은 찍었나 했는데 영짱도 안찍은 모양이다. 결국 포앵제로는 우리 일곱명 중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운데 보이는 두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것이 노트르담 대성당. 어느 풍경이 그렇듯 이곳도 날씨가 흐리면 아름다움이 반감된다.



점심시간은 훨씬 지났으나 우리는 점심도 못 먹고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시테섬 건너편의 먹자골목으로 들어갔다. 하지막 먹자골목이라고 해 봐야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일반 레스토랑 피자집 파스타집 케밥집 등등? 어딜 가도 비슷한 메뉴밖에 보이지 않았고 가져온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맛집을 쉽게 찾을 수 없어서 더욱 헤맸다.

 


결국 들어간 이름 모를 케밥집.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은 아닌 모양인데 회화수준이 우리랑 엄청 비슷해서 대화가 너무 잘 됐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 모양인지 음료수 주문할 때는 한국어로 '세개?'라고 하며 나름 한국어 실력을 뽐내더라. 사실 비슷한 발음의 프랑스어나 영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어를 들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고 신난다.
여기 케밥은 그저 그렇다. 값이 싸니 군소리 안하고 먹는거지 돈도 비쌌으면 배가 차면서 마음 속의 아쉬움도 차오를만한 퀄리티였다. 유럽 케밥집은 대부분 다 비슷한 것 같았다.



그리고 생트 샤펠로 간다. 엄청난 대기열로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지도에는 브뤼셀 법원이라고 나오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아니다? 어쨌든 정의의 전당(Palaris de Justice)이라 불리는 파리의 최고재판소이다. 여길 기점으로 오른쪽에는 콩시에르쥬리, 왼쪽에는 생트 샤펠이 위치하고 있다. 내가 지도를 쥐고 있었으면 생트 샤펠 이후에 콩시에르쥬리도 한 번 찍고 가는 건데-.-; 놓치고 온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생트 샤펠.

 

journey to EUROPE #8-1 프랑스 DAY2 "생트 샤펠"





익숙한 사진? 생트 샤펠의 출구는 바로 이 법원 바로 앞이다. 어찌 보면 이 법원이나 생트 샤펠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트 샤펠에 입장할 때는 꽤 까다롭게 소지품검사를 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journey to EUROPE #8-2 프랑스 DAY2 "노트르담 대성당"



여기는 노트르담 대성당 건너편으로 아무리 지도를 뒤져 봐도 뭐라고 말이 안나와 있네. 안에서 근위대병이 뭘 하길래 혼자 신나서 막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이곳이 브뤼셀 법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비가 아니라고 뜯어말리는 바람에 이성을 되찾았다.




이후 대책회의를 가졌다. 궂은 날씨 가운데 다들 지쳐 몸도 마음도 피곤한 상태였고 유람선을 타고 다시 숙소쪽으로 돌아가기로 했었지만 궂은 날씨에 유람선을 타느니 그냥 집에 일찍 들어가서 쉬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더이상의 일정 소화 없이 그냥 빠른귀가를 택했다. 결국 이날은 계획한 것의 30% 정도도 보지 못한 셈이 되었다. 영짱이 매우 아쉬워 하더군... 나도 그만큼 아쉬웠다. 돌아가는 길에서는 앞으로의 더욱 긴 여정을 위해 쭉 쉴 요량으로 별다른 계획도 잡아놓지 않았다. 그나마 생각나는 것이 펍? 이정도?



이틀째 보는 와인창고 지붕. 사실 이 부근(Bercy Village)이 수년 전 와인창고로 쓰였다는 것은 이날 내비가 털레털레 돌아와서 방에서 뒹굴다가 알아낸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던 우리는 그말을 듣자마자 이 부근을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좀만 더 쉬다가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이때는 비가 어느정도 갠 뒤라 마음껏 돌아다니기에 불편한 점은 적었다.


 

베르시 빌라주에서 재미있었던 점이라면 바로 이 곳. 베르시 발리주 곳곳을 이어주는 Passage Saint Viviat에는 이런 것이 전시되어 있다. 과거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월리를 찾아라'의 실사판이다. 방법은 과거의 월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월리와 월마(월리의 여자친구), 그리고 각종 아이템들을 사진 속에서 찾아내면 되는데 월리와 아이템들은 비교적 찾기가 쉬우나 월마는 저기 걸려있는 것처럼 생기지가 않아서 찾기가 매우 난해하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 월리는 어디있을까요?



보정을 안해서 보기가 힘드니까 정답을 함께 첨부. 문제가 있는 액자 바로 맞은편에는 정답이 표시되어 있는 액자가 함께 있다. 월리는 동그라미로 월리를 제외한 다른 사물이나 월마는 화살표로 표시가 되어 있다.

이걸 보고 나랑 영짱이랑 매우 불타올라서ㅋㅋㅋ 파사쥬란 파사쥬는 모두 쏘다니며 누가 더 월리를 빨리 찾나 하는 시합을 했었다. 결과는 나의 압승!ㅎㅎ 이곳에 걸린 그림들은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또한 여기서 본 월리를 찾아라가 시초가 되어 이곳 저곳 다니면서 찍은 '영짱을 찾아라' 시리즈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최대한 월리와 비슷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찾을 수 있으려나?

첫째날도 이야기했지만 언제 봐도 이 거리는 참 독특하게 생겼다. 밀레니엄 브릿지에 이어 이곳 베르시 빌라쥬도 과거와 현재와 공존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하늘에 걸려 있는 천막이 참 눈도 마음도 아름답게 하구료. 이건 밤에 보면 더 예쁘다.



상가로 개조된 베르시 빌라주는 정말 많은 종류의 상점이 입점해 있다. 딱히 일정이 없어 시간적으로는 매우 여유로웠지만 배가 고팠던 탓인지 가게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시간이 많이 지나 문을 닫은 가게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베르시 빌라주에는 상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거주지도 존재한다. 이런 동화같은 마을에서 사는 느낌은 어떨까?


그리고 슬슬 배가 고파 근처 상가거리에서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우리가 찾은 곳은 히포포타무스. 그냥 적당한 수준의 프랑스 패밀리 레스토랑이지만 프랑스 내에서 적당한 수준이고 한국과 비교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의 수준 차이를 보인다. 다른 집도 괜찮겠지만 안가봐서 잘은 모르겠고 굳이 어디를 가야 할 지 모르겠다 싶으면 히포포타무스를 추천!



주문한 칵테일은 히포 스무디. 어느 식당을 가든 그 식당의 이름을 내건 메뉴가 가장 주력이고 퀄리티도 만족도도 좋듯 히포포타무스의 이름이 걸린 히포 스무디는 아주 달달하고 좋았다.



이날은 하루 종일 고생한 우리 자신에게 무언가 위안을 주고 앞으로 힘내자는 의미에서 무엇을 먹든 돈걱정 하나도 하지 않고 왕창 쓸 목적으로 이곳을 찾았으나 역시 가격 앞에 겸허해 지는것은 어쩔 수 없는 배낭여행자의 보편적 심리인 것 같다. 고심에 또 고심을 하다가 결국 고른 것은 평범한 립이었는데 그 양과 퀄리티에 정말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도 맛이거니와 때려도 때려도 쓰러지지 않는 불곰처럼 썰어도 썰어도 줄지 않는 립에 한 번의 나이프질 한 번의 포크질에 기쁨과 환희가 가득찼다.



사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던 VIVI라는 웨이트리스가 참 기억에 남는다.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없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것을 재빨리 눈치채고 아주 편하게 영어로 소통을 하는 눈치와 센스부터 시작해 얼굴도 이쁘고 와이파이 어떻게 쓰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며 알아보러 가더니 다시 와서는 이렇게이렇게 하면 되는데 솔직히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는 쿨함까지 모든 것을 겸비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사진 한 번 찍어도 될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그럴만한 용기도 없고 근무중에 바쁜데 그런 부탁을 하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만두었다. 아 소심한 사람이여... 하지만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다ㅜㅜ
사실 우리와 일정을 함께 하는 춘천 세자매들과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참 아쉬웠다. 우리만 좋은걸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내가 돈만 많았으면 자매들 밥이라도 사주는건데 과외도 짤렸는데 유럽까지 오면서 완전히 거지신세로 전락해서 아무리 베풀고 싶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있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하지만 펍 정도는 사 줄 수 있지. 애들 데리고 펍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한 우리는 다시 숙소로 가 자매들을 불러 또 베르시 빌라주로 나섰다.



 

자매들 데리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베르시 공원이었지만 입장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5분 뒤에 폐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일정이 없어도 공원에 갇히는 건 배낭여행자로서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되어 눈물을 머금고 그냥 나왔다. 여기 사진 찾아보니까 정말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던데ㅜㅜ



이때 나선 베르시 빌라쥬에서 자매들과의 본격적으로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 사실 별 생각 없었는데 영짱한테 저녁하니까 된장찌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며 된장찌개!’라고 한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다들 재미있게 웃었다. 웃음이 있으면 사람 간의 어색함도 누그러지는 법. 그때부터 물꼬가 트여 그간의 뻘쭘함을 벗어던지고 하나의 패밀리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먹히는 개그코드를 빨리 습득한 나는 여행 내내 간헐적으로 개그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어찌되었건 덕분에 된장찌개는 여행 내내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우리들 사이의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베르시 빌라쥬에서 찾은 펍은 THE FROG.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영국에서 술 한잔도 마시지 못한 우리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펍은 무조건 가야된다고 선을 그었다. 저녁대에 베르시 빌라쥬에 사람이 막 붐비는 시간대라 좋은 자리는 고사하고 앉을 자리마저 찾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때마침 나타난 실외 거리 쪽 자리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맥주는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희한하게 다들 제각기 다른 맥주를 시켜서 테이블이 참 알록달록했다. 당연히 미성년자인 해은이는 칵테일을 시켰나 스무디를 시켰나? 이름이 스트로베리 퍼피라는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난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Inseine(insane 아님)이라는 맥주를 주문했다. 맛은 별로 없었다. 몇 잔 계속 마시면 사람이 미칠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여기도 Frog 어쩌구 하는 맥주가 있었는데 히포포타스의 히포 스무디처럼 더프로그도 그 맥주가 가장 맛있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어떤 집을 가도 그 집에서 주력으로 미는 메뉴가 가장 좋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집 주변이든 학교 주변이든 자주 가는 식당이라면 이것저것 모험을 해도 나중에 만회할 기회가 있으니 별 상관이 없지만 최소한의 비용과 기회로 최대의 만족을 얻어야 하는 의무 아닌 의무가 있는 배낭여행자에게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주력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이득이라는 느낌이다.

여기서 여섯 명의 좀 더 진솔한 대화가 펼쳐졌다. 진솔한 대화라고 숨겨왔던 마음을 털어놓는 그런 대화는 아니고 서로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가는 그런 대화? 얘들이 춘천에서 왔다는 것도 어느 학교 무슨 과에 다닌다는 것도 임정이 수정이 자매가 같은 과에 다니면 어떤가 하는 것도 사실 공부를 제일 안 하는 것은 나지만 셋 중에서 가장 의사같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비라는 것도 임정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임정이나 수정이나 둘 다 술을 꽤 좋아한다는 것도 특히 임정이가 술 이야기 나오면 눈빛이 달라진다는 것도 해은이의 제대로 된 첫인상은 꽤 엽기적이었다는 것도 자매들에 대한 내 이미지는 꽤 귀여운 사람이라는 것도 하지만 난 원래 귀엽다는 것도 자매들이 먼 유럽까지 오면서 건빵이나 라면 같은 전투식량을 엄청 싸왔다는 것도 하긴 한 집에서 셋이나 보내는데 먹을 것까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겠냐만 그래도 유럽에선 먹거리도 한 부분인데 그런 부분을 누리지 못한다는 측은함도 술 앞에 담대하고 강한 사람이 된 나의 노하우까지 모두 시시콜콜한 이야기이지만 이날의 훌륭한 안주거리가 되었다. 자매들은 하나같이 의성어 의태어에 약해서 조금만 뭐라고 해도 빵빵 웃어제끼는 바람에 적은 노력으로도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서 그다지 부담이 없었다.

처음으로 술이 함께 했던 제대로 된 밤마실은 한 한시간 반 정도 계속되었다. 비록 비만 오고 봐야 할 건 반도 못보는 망한 여행이었지만 이 날 저녁으로 이전의 모든 고생을 보상받은듯한 나름 기쁘고 즐거운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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