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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스캇 펙 - 「아직도 가야 할 길」

- 지금으로부터 조금은 먼 옛날, 예과생때 CMF 선배에게 받았던 책임. 기억이 많이 흐릿하지만 아마 당시엔 이 책을 후배에게 선물하고 감상문을 받는 것이 우리 학교 CMF의 전통 아닌 전통이었을 것임. 하지만 딱 한 번 펼쳐서 몇 페이지 읽지도 않고 여태껏 내버려두고 감상문도 쓰지 않은 채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동아리에 등록은 되어 있으나 활동을 거의 안했던, 속칭 유령이 된 채로 대학 시절을 보냈다. CMF 활동처럼 이 책도 기억에서 거의 지워버린 채 지냈지만 최근 의도적 다독을 하던 중 이 책이 눈에 갑자기 들어와서 읽게 됐다. 지금 와서 다시 펼쳐 보니 종이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된 것을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왜 이제 이 책을 펼쳐봤나 싶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지금처럼 여유롭고 사색에 빠지기 쉬울 때가 아니면 읽지를 않았겠구나 싶기도 하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고 감상을 글로 옮깁니다 성우 형님...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영적인 성장. 이 책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이 하나만을 논하고 있다. 영적인 성장은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자 평생에 걸쳐 수행해야 할 과제이며, 그 영적인 성장을 위해선 노력을 기반으로 한 훈련이 수반되어야 하고(유일하게 기술된 영적 성장의 장애물은 '게으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이 게으름이다 하는 흥미로운 의견도 있다) 그 노력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나와 나 아닌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신이 주신 '은총'이다. 450장 가량의 장황한 기술이지만 핵심만 놓고 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런 느낌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는 사랑에 대해 굉장히 딱딱하게 규정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올바른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움과 동시에 내 자신의 정신적 성장도 촉진되는 것" 이다. 영적 성장에만 과도한 초점이 맞춰진 것인가 싶지만 그런 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다시 채우고', 그 과정을 통해 '내 기쁨이 증가함'이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는 주요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나와 대상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감정, 애틋한 심리, 달콤하고 황홀한 순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들은 "애착"이란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은 우리가 사랑을 하는데 필요한 주요한 원동력이 된다고도 한다.
최근 모 매체를 통해 '연애를 왜 하세요?'라는 질문을 보고 생각을 좀 했었다. 꽤 많은 고민을 했는데 아직도 연애를 하는 명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마음에 쏙 와닿는 결론을 내리기 힘들었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족을 위해 사랑을 하며, 그 만족을 좇는 중에 나와 상대방을 이해하며 올바른 관계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때 얻어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정신적 성장이지만, 그 자기만족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다양한 감정? 정서적 안정? 아니면 정말 영적인 성장? 하지만 그 어떤 것이든 쉽게 규정하기 어렵더라도, 그 모든 것이 좋으리라는 것은 안다.

- 이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과거 회상을 많이 하게 되던데... 작년 소개를 받을 뻔 하다가 무산되었던, 정확히는 내가 반려했던 한 분이 자주 생각이 났다. 겉보기에는 괜찮은 사람이었으나 내가 반려를 했던 것은 크고 작은 행동에서 오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선입견, 그리고 수동적 의존성이었다.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는 코멘트를 소개시켜 주려는 분이 달았는데 내가 공허하면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기 쉽다. 최근 스스로 정립했던 바람직한 만남은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을 만나 서로 좋은 것을 나누며 더욱 좋은 삶을 사는 것'이며, 수동적 의존성은 그러한 것과 정면으로 맞선다고 생각했다. 독립적인 것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라는 기둥이 견고하게 서 있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다리가 다리가 서로를 이어주며, 다리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견고한 기둥으로 시작한 이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반면 상대방이 나를 채워주길 원하는 관계는 단기간에 강한 결속력이 형성되지만 어느 한쪽의 필요가 줄어들거나 내가 기대하는 바를 상대방이 채워주지 못할 때 강해 보이던 결속력은 더욱 무너지기 쉽다. "궁극적으로 의존성은 관계를 이룩해주기 보다는 파괴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행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답니다. 하지만 더 잘 살기 위해 상대방과 함께 살 것을 선택하는 것이죠"라는 책의 말은 이러한 생각과 어느정도 맞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 그런 점도 있고, 어떠한 형태로든 친해질 수 있는 관계라면 추후에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섣부른 만남을 선택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레 겁먹고 도전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영적 성장의 면에 있어 게을렀기 때문이다. 그 게으름에 빠져 좋고 나쁨을 확인할 기회조차 걷어차버린 과거의 내가 조금 아쉽기는 했다. 이 부분은 매우 찌질한 궁상임...

- 기독교인으로써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이 책에서 칭하는 '은총'을 입고 사는 자였다. 나는 외적인 은총, 즉 일련의 사건을 경험함으로써(이 또한 책에서는 '기적'이라 칭한다) 어디에 가서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을 만난 자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오래 알고 지냈던, 지금은 똑같이 군의관이 된 분을 최근에 만날 일이 있었는데 '내가 비록 종교는 없지만, 널 보면 정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감사한 말이다. 하지만 2020년 접어들어 든 생각은 그간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보았던 것이지, 주시는 주체인 '하나님'을 보지는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이 세상 개개인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의 은총을 주시는 분이다.
더불어 이런 은총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내적 은총은 이러한 무의식이 의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가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든, 하지 않든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내적 깨달음이 바로 이런 것을 칭하는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인간의 욕심과 죄성으로 인해 다른 방향으로 빠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고민하고, 깨닫고, 실천하는 과정이 아닌가 했음.

- 이 책을 받을 당시에 읽었더라면 과거의 내 삶과 삶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을까? 과거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미성숙 그리고 이기심으로 점철된 지난날들이 참으로 아쉽다. 하지만 과거가 부끄러운 것은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성장했기 때문이란 말처럼,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반성과 발전이 있는 것이다. 그런 시절을 곱씹으며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것이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가야 할 길이다. 더불어 2020년은 게으름을 비로소 타파했다는 생각을 했었으나 이런 정신적 게으름 즉 변화를 두려워함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반성할 점이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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